철원 심원사 지장보살 이야기
| 일광 | 조회수 4,940
지장재일날 강원도 철원 심원사에서..



금수강산 대한민국 3대 지장도량 가운데 한 곳인 이곳 철원 심원사.

심원사가 왜 생지장보살 기도도량인지는 일단 전해지는 설화를 가장 먼저 읽어 봐야 한다.

아래는 전해내려오는 설화를 퍼 왔다.



[옛 신라시대의 이야기로, 당시 강원도 철원땅 보개산 기슭에 큰 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가지가 휘도록 먹음직스러운 배가 열린 어느 해 여름날, 까마귀 한 마리가 배나무에 앉아 짝을 찾듯 ‘까악까악’ 울어대고 있었다. 배나무 아래에는 포식을 한 독사 한 마리가 여름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때 까마귀가 다른 나무로 날아가는 바람에 가지가 휘청거리며 커다란 배 한 개가 독사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뱀은 화가 나서 독기가 오른 머리를 하늘로 쑥 뽑아 사력을 다해 독을 뿜어내었다. 독기가 살을 파고들면서 순식간에 까마귀는 힘이 쑥 빠진 채 더 이상 날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뱀도 너무 세게 얻어맞은 데다 독을 다 뿜어내어 죽고 말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더니 어처구니없이 까마귀와 뱀이 함께 죽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까마귀와 뱀은 죽어서까지도 서로 원한이 풀리지 않았고, 뱀은 죽어서 우직한 멧돼지가 되고 까마귀는 암꿩으로 환생하였다. 멧돼지가 된 뱀이 먹이를 찾아 산을 헤매던 어느 날, 마침 암꿩이 된 까마귀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멧돼지는 전생의 일을 기억하며 살며시 등성이로 올라가 발밑에 있는 큰 돌을 힘껏 굴렸고, 암꿩은 미처 피할 겨를 없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까마귀를 죽인 멧돼지는 속이 후련하였다.


그러나 이때 사냥꾼이 그곳을 지나다가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꿩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단걸음에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내려가 부인과 함께 요리를 해먹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태기가 없던 사냥꾼 아내에게 그달부터 아기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난 후 사냥꾼의 아내는 옥동자를 분만하였고, 두 내외는 금지옥엽 정성을 다해 아들을 키웠다. 이윽고 아들은 씩씩한 소년이 되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활쏘기를 익혔다. 그러나 전생의 업보를 통해 태어난 아이는 멧돼지를 잡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고, 그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어느 날 사냥을 허탕치고 두 부자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아들이 멧돼지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 저기 멧돼지가 있어요!”
아들의 외침을 들은 사냥꾼은 정신이 번쩍 들어 활시위를 당겼고, 화살은 멧돼지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멧돼지가 죽은 것을 확인한 아들은 기뻐 날뛰며 소리쳤으며, 장성할수록 더욱 멧돼지를 증오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세월이 흘러 사냥꾼은 사냥도구를 아들에게 물려준 채 세상을 떠났고, 중년에 이른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전히 사냥을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개산으로 사냥을 나간 아들은 그날따라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이상한 산돼지를 발견했다. 그 산돼지는 우람할 뿐 아니라 온몸에서 금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보는 순간, 있는 힘껏 활시위를 당겨 화살을 적중시켰다. 그러나 금멧돼지는 피를 흘리면서도 여유있게 환희봉을 향해 치닫는 것이었다.


그는 멧돼지가 숨어있는 곳까지 쫒아 올라갔지만, 멧돼지는 간 곳이 없고 돼지가 있어야 할 장소에 지장보살 석상이 샘 속에 몸을 담근 채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석상의 몸에는 사냥꾼이 명중시킨 화살이 꽂혀 있었고 사냥꾼은 그 묘한 광경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까마귀와 뱀의 인과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처님께서 멧돼지로 화현하여 화살을 맞은 까닭을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물 속에 잠긴 작은 석상을 꺼내고자 안간힘을 썼으나 석상은 보기보다 무거워 끄덕도 하지 않았고 날이 저물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이튿날 그 자리를 다시 찾은 사냥꾼은 또 한번 놀랐다. 어제 분명히 샘 속에 잠겼던 석불이 어느새 물 밖으로 나와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이에 크게 깨달은 그는 석불 앞에 합장하고 출가하기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그를 따르는 3백여 무리를 동원하여 절을 짓고 석불을 봉안하였다.


지금도 강원도 철원 보개산에 가면 신라시대 이순석이란 사냥꾼이 지었다는 절 석대암이 있으며, 이 절의 주불인 지장보살은 석 자의 키에 왼손에는 구슬을 들고, 왼쪽 어깨에는 사냥꾼의 화살이 박혔던 자리라고 전하는 한 치 가량의 금이 뚜렷이 남아 있다. 이후 이 이야기는 살아 있는 지장보살의 가피를 입은 심원사 창건설화로 변용되어 아래의 ‘황금멧돼지와 사냥꾼’라는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장신앙과 관련된 신화

지장보살의 영험함을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사냥꾼 형제의 출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17년(720) 의 일로 보개산 아래 마을에
산짐승을 잡아 목숨을 이어가던
이순석(李順碩)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제는 사냥에 나서 보개산 너머
담터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마침 큰 멧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고,
순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화살을 쏘았다.

마치 금란가사를 두른 듯한 누런 멧돼지는
왼쪽 앞다리에 화살을 맞고 보개산 정상인 환희봉 쪽으로 달아났다.
사냥꾼 형제는 핏자국을 따라 멧돼지가 멈춘 곳에
이르러 바라보니 금빛 멧돼지는 볼 수 없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돌로 된 지장보살상이
맑은 물이 넘쳐나는 샘물 가운데 상반신만 내놓은 채 있었다.
화살을 뽑으려 했으나 석상은 태산 같은 무게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크게 놀란 형제는 깨달은 바 있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대성(大聖)이시여!
저희들을 죄에서 구해 주시려고 이 같은
신변(神變)을 나타내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만약 내일 이 샘물 곁에 있는 돌 위에 앉아 계신다면
마땅히 출가하여 수도하겠나이다.

다음 날 형제가 그곳으로 가 보니 과연 석상이
돌 위에 있으므로 두 사람은 바로 300여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출가하였다.
샘 옆의 숲 속에 돌을 모아 대(臺)를 쌓고 항상 그 위에 앉아
정진하였으므로 그곳을 석대암(石臺庵)이라고 불렀다.
암자에는 자신들의 화살에 맞은 석상을 모셨다.
견불령(見佛嶺)과 대광리(大光里)라는 지명도
지장보살석상의 영험에서 유래한다.

고려 초의 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심원사 아래 마을에
어려서 열병을 얻어 장님과 앉은뱅이가 된
이덕기와 박춘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심원사 대종불사를 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온 화주 스님에게
대종불사에 시주하면 부처님의 가피로 재앙이 소멸되고,
현생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듣고
화주가 되기로 약속했다.

3년여 동안 이들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시주를 하였으며, 마침내 대종불사의 타종식 날이 되었다.
첫 타종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앉은뱅이 박춘식은 오색구름을 타고
밝은 구슬을 손에 지닌 지장보살님께서 하늘에서
심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앉은뱅이는 지장보살님이 보인다 고 소리치며
장님의 등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자 두 다리가 쭉 펴지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덕기 또한
어디! 어디! 하고 소리치며 눈을 비비자 앞이 보였다.
그들은 산마루 위의 오색구름에 쌓여 큰 빛을 발하고
지장보살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절하였다.
마침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었다.
그들이 지장보살님을 본 고개를 견불령,
그들이 살던 마을을 부처님의 큰 광명이 머무르는
동네라 하여 대광리라 불렀다.
애초에 심원사가 개창된 곳은 지금의 심원사에서
서남쪽으로 약20km떨어진 경기도 연천군 보개산(寶蓋山)이다.

[출처] 지옥과 지장보살 - (2)|작성자 아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