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의 화신 김교각
| 일광 | 조회수 1,751
④대원본존지장보살 마하살 (大願本尊地藏菩薩 摩訶薩)
      큰 서원(원력)의 본존이신 지장보살님
지장경에 보면 지장보살의 과거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는 시라선견이요 어머니는 열제리였다. 아버지는 삼보를 공경하고 신앙을 하다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도 불법을 비방하고 삼보를 불신 하다가 죽는다. 어린 소녀는 남아 있는 재산을 정리하여 각화정자재왕 부처님을 찾아간다. 어머님의 천도재를 올리기 위해서 그러나 길 옆에는 가난하고 외로운 이가 너무 많다 19세의 어린 소녀는 중생공양 제불공양이라 (衆生供養 諸佛供養)생각하고 모든 재물을 이들에게 베푼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옷마저 다 벗어주고 알몸으로 구덩이에 몸을 숨긴다. 천안으로 이 광경을 보신 각화정자재왕 부처님이 직접 와서 소년의 이마에 손을 얹고 수기를 주신다.
소녀는 대원을 세운다.  
  중생도진(衆生度盡) 중생들을 모두 구원하겠습니다.
  방증보리(方證菩提) 그리고 깨달음을 얻겠습니다.
  지옥미공(地獄未空) 지옥이 없어지지 않으면
  서불성불(誓不成佛) 영원히 성불하지 않겠습니다.
  마하살이란 접미사로서 ‘위대한’으로 해석된다. 즉 ‘지장보    살마하살’은 ‘위대한 지장보살님’의 뜻이다.
  <4대보살>
  문수보살→(대지)지혜         보현보살→(대행)실천
  관음보살→(대비)자비   지장보살→(대원)지옥중생 구제

지장보살의 화신 김교각
1. 김교각스님의 생애(696-794)
중국에서 4대불교 성지가 있는데 산서성 오대산 문수도량.절강성 보타산 관음도량. 사천성 아미산 보현도량이며 그리고 안휘성 구화산 지장도량이다. 이 4대성지 가운데 구화산 지장도량을 신라의 김교각스님이 개창했다는 것은 실로 우리나라의 자랑이라 여겨진다.
구화산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스님은 동진(東晋) 배도화상(杯渡和尙)이다. 서기 401년에 지금의 화성사에 초막을 짓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당나라 중기에 단호(檀號)라는 스님이 머물면서 도교(道敎)와 심한
교세 다툼을 하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동승도래(東僧渡來)라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었다. 동승도래란 동쪽으로부터 훌륭한 스님이 이곳에 온다는 예언이다. 이때 김지장 스님이 나타나게 된다
김지장스님은 24세에 출가하여 신라(新羅) 성덕왕(719)년에 바다를 건너 구화산에 오게 된다. 그때 흰색의 개(선청 善聽)과 금지차(金地茶)
(운무향차 雲霧香茶, 모봉차 毛峰茶라고 현재 중국인은 부른다.)
와 황립도(黃粒稻) 그리고 오차송(향기로운 과일 종류)을 가지고 온다.
<송고승전> 구화산 화성사 지장편에 보면
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교각이며 국왕의 지속(支屬)이라 하였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마음에는 늘 자비심은 있었다. 키는 칠척거구였으며 머리에 특이하게 뼈가 높이 솟아있고 힘이 장사였으며 항상 스스로 말하길 “시방세계 넓은 우주안에 불성이 충만하여 조금도 빈 곳이없다”라고 하였다.  
김지장법사는 처음에 구화산에 들어와 지금의 화성사(化城寺) 동쪽에 조그만한 동굴(동암 또는 지장동굴) 발견하고 수행터로 잡는다.
데리고 온 삽살개(선청)와 고행을 함께 하게된다. 먹을 식량이 부족하여 쌀에 흰흙(白土)을 섞어서(또는 觀音土) 주린 배를 달래고 난행고행을 하여 간신히 몸을 지탱하여 갔다.
그때 멀리 마을에 사는 제갈절(諸葛節)이라는 노인이 여럿명의 이웃을 데리고 와서 이 광경을 보고 놀라고 감탄하면서“스님은 고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편히 살고 있으니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하고 시주금을 모아서 절을 짓게 되는데 그것이 화성사(化城寺)이다.
그리고 승유(僧瑜)라는 제자가 황무지를 개간하고 황립도의 벼를 심고 김지장법사가 가지고 온 금지차를 가꾸게 된다.
지장법사의 두편의 詩가 전해지고 있으며 함께 있던 동자승이 마을로
돌아갈 때 그 보냄을 아쉬워 하고 있다.
               < 동자를  보내며 >
         불문이 쓸쓸해 집 생각하는구나
         정든절을 떠나 구화산을 떠나는 동자여
         집 생각 언제나  그리워하더니
         꿈같은 불도의 땅도 너를 붙잡지 못하는구나
         첨병곡의 달구경도  마지막이구나
         자명구의 꽃놀이도  마지막이구나
         눈물을 거두고 조심히 다녀 가거라
지장법사는 나이 99세 였다  (음)7월 30일 대중을 모아 놓고 작별을 고한 다음 가부좌를 한 채 열반에 드시었다<송고승전>에는 산이 울고 돌이 울고 뭇 새들이 슬피 울었다라고 한다. 그리고 지장법사는 제자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내가 열반한뒤 내 육신을 다비하지 말고 항아리 속에 넣어 두었다가 3년후에 열어 보라 그리고 아직도 육신이 썩지 않으면 그대로 개금을 하여라” 하였다. 그리고 3년후 결과부좌한 썩지 않은 육신을 등신불로 안장하고 육신보전을 세웠다.
지장법사는 탄신일. 성도일. 입적일 (음)7월 30일 모두 같다
그래서 3일 전부터 법회가 열리며 향과 촛불을 올려 구화산은 불야성을 이룬다. 지장법사는 무불시대(無佛時代)의 메시아로 추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