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장탱화
우리 나라에 지장신앙이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삼국유사에는 8세기 중엽 진표율사에 이르러 지장신앙과 관련된 대목이 보이고 있다. 그후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후(死後) 신앙과 연결되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많은 지장탱화가 등장하는데, 이것으로 우리 나라에서 지장신앙이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겠다. 따라서 명부전의 중심에는 반드시 지장탱화가 모셔지지만, 지장전이나 명부전이 따로 지어지지 않은 절에서는 사찰의 주된 전각에 지장탱화를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지장탱화의 주존인 지장보살은 사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천의 대신 가사를 입고 있으며 삭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투명한 구슬인 장상명주를 가볍게 쥐고 있고 왼손에는 육환장(석장)이라는 지팡이를 쥐고 있는바, 지팡이 윗부분에 장식된 여섯 고리는 육바라밀을 상징 한다. 또한 지팡이의 머리 부분에 불상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부처님은 각화정자제왕여래라고 한다.
지장보살이 탱화에 등장하는 경우는 첫째 지장보살만을 단독으로 그려진 것이 있고, 둘째 지장삼존상을 그린 것이 있으며, 셋째 지장과 그 권속까지를 그린 것, 넷째 지장과 그 권속 및 명부의 10왕까지 그려넣은 것이 있다. 이 밖에도 지장보살은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여래의 협시보살로 등장하기도 한다.
우선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에는 특히 지장보살만을 단독으로 그린 것이 많았는데, 대부분 앉아 있는 좌상보다 서 있는 입상으로 조성되었으며 흔히 두건을 쓰고 석장을 짚은 채 투명한 보주를 들고 있다.
두번째 지장삼존상으로 모셔진 경우에는 중앙에 지장보살이 있고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거느린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중앙의 지장보살은 좌상으로 양 협시존상은 입상으로 표현한다.
세번째의 경우는 지장보살이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로 지장의 권속들이 배치되는 형식이다. 이같은 형식에 등장하는 지장보살은 조선시대 후기부터는 주로 머리를 깎은 삭발형으로 나타나며 결가부좌를 했거나 반가좌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손에는 석장과 구슬을 쥐고 있으며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는데, 이외에 보살이 4명 내지 6명씩 배치되기도 하고, 윗부분에는 지장원찬 23존불이 그려지기도 하며 지옥의 나찰등 권속등이 배치되기도 한다.
네번째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10왕과 기타 권속들이 함께 배치된 형식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지장탱화에서는 몇 가지 특징적인 구도를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지장보살의 머리 모양에서 조선시대 전기 이전에는 삭발형과 두건형 중 삭발형이 약간 많은 편이었지만 조선시대 후기에는 삭발형이 압도적으로 많이 표현 되었다. 둘째, 앉은 모습은 결가부좌형과 한쪽 다리를 내린 반가좌형의 두 가지 구도를 보이는데, 결가부좌형이 다소 많이 나타난다. 셋째, 손 모양의 경우에는 왼손에 석장을 쥐고 오른손 에 보주(장상명주)를 잡은 형태가 거의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