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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화遷化
천화의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범어사 화엄전에 주석하는 무비스님의 <직지(直指>라는 책을 읽으면서 시작 되었다. 역대 많은 고승들이 화두일념으로 수행정진 하다가 마지막에는 천화를 했다라고 되어 있다. 그때부터 천화遷化에 대하여 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천화란 무엇인가? 어느날 유튜브 동영상에 법정스님의 <의자>를 보게 되었다. 법정스님께서 노환으로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계셨다. 사제 법흥스님이 병문안을 오게 되는데, 사제에게 <스님은 천화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들어보긴 해도 그 깊은 뜻은 잘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법정스님은 천화遷化란 <이승에서 중생교화를 잘 마치고 다른 세상으로 옮겨서 다시 교화 한다>는 뜻으로 고승의 입적 또는 열반을 의미한다라고 하셨다. 천화의 본질적 의미는 고승들이 임종을 앞두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살아 생전 모습을 감추어 버린다. 천화 할 장소에 누울 수 있게 땅을 움
푹하게 파고 나뭇잎을 주워모아 바닥에 깔고 반듯하게 누워서 남아있는 나뭇잎으로 자신을 덮고 조용히 임종을 기다리는 것이다. 천이화멸(遷移化滅), 또 법정스님은 밤 배를 타고 멀리 가다가 아무도 몰래 바다에 뛰어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천화의 완성이라고 말씀 하신다. 천화는 살다가 나의 마지막 추한 모습을, 나의 허물어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의 은사 여환스님도 마지막 입적 시에 여쭤보니 나의 이런 모습을 세상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 하셨다. 이미 내가 건강할 때 모두 만나서 덕담을 나누고 해야 할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고 하셨다. 천화의 깊은 의미는 민폐 끼치고 싶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부담주고 싶지 않고, 자기의 강한 의지로 조용히 떠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에 마지막 천화를 보여주신 큰 고승이 한 분 계셨다.
범어사 덕산스님(1895~1985)이시다. 황해도 안악(安岳)에서 출생하셨다. 스님의 속명은 김덕부(金德浮)이다. 20세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35세 안악군수를 역임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다음해 1946년에 부산 범어사 출가하게 된다. 덕산스님의 출가 동기는 존재의 진실 탐구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존재의 무상(無常)에 공감하고, 하동산스님을 은사로 수계를 받고 법명을 덕산(德山)으로 하였다. 선원에서 정진하시고 항상 검소하시고 청빈하셨다. 스님은 수선정각誰先正覺을 늘 곁에 좌우명처럼 생각하였다. 누가 먼저 깨달을 것인가? 초심 수행자의 마음으로 늘 곁에 누고 경책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 한주로 살면서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하고 낫을 들고 산에 올라가 소나무의 곁가지를 치는 것으로 소일을 했다. 1985년 8월 20일 덕산큰스님(91세)은 낫을 들고 산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을 감추었다. 범어사 대중스님들은 처음에 신도님 집에 공양청을 받아 출타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스님이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범어사 대중스님들과 경찰이 금정산 일대를 찾아 나섰다. 덕산노사는 자신이 평소 소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장소에 지팡이를 세워 두었다. 그곳에서 금정산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니 이번에는 여름에 입는 속 내의 나무에 걸어 두었다. 또 위를
향하여 걸어 올라가니 이번에는 소나무에 낫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덕산노사의 육신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75일 지나고 11월 어느날 등산객이 장군봉 인근에서 휴식을 하다가 저 아래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내려가 보니 스님의 법체가 있었다. 사방은 바위로 둘러 있고 중앙의 너럭바위 위에 반듯하게 누워 계셨다. 오른손은 머리를 괴고 왼손은 손수건에 솔잎을 쥔채 하늘을 향하여 바라보고 있었다. 천화하신 장소는 경남 양산시 동면 가산리 금산부락 뒷산이다. 그러니까 금정산을 넘어서 금정산 뒤편에서 천화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인생 마지막에 대하여 깊은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덕산큰스님이 보여준 이 천화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오랜 수행과 내공, 자기원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생을 마치고자 서서히 곡기를 끊고 마지막 마시는 물도 끊고 오르지 손수건에 솔잎 가루를 입에 문지르면서 서서히 적멸에 든 것이다. 내면의 자기 수행력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덕산큰스님은 <이것이 천화이다>라는 것을 보여준 우리시대의 고승이다.
범어사 석공(石公)스님 방에는 덕산스님의 글 수선정각誰先正覺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고승은 덕산큰스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덕산스님의 상좌로는 자인스님, 자일스님, 보일스님, 적운스님, 자원스님, 자범스님, 현공스님이다. 덕산노사가 열반하시기 6개월전, 현공스님이 동명불원에 살고 있을 때 어느날 꿈을 꾸었다. 은사스님의 관을 메고 6명의 상좌가 산신각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스님 한 분이 어깨가 아프다고 현공스님과 교체하기를 원했다. 스님은 뒷에 합장하고 따라가다가 자기가 관을 메고 산신각 쪽으로 걸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6개월 후에 은사스님이 열반하신 것이다. 2015년 범어사 주지 수불큰스님께서 석공스님. 보일스님 적운스님에게 연락을 해서 범어사 역대 고승이 비림에 덕산큰스님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웅촌의 반야선원에 자원스님이 은사스님의 유골을 오래동안 봉안하고 있었는데 그 유해를 범어사로 모시고 와서 비석을 만들고 제막식을 한 것이다. 우리시대의 마지막 스승 명진당 덕산대선사(明眞堂 德山大禪師)이시다.
2024년 11월 11일 일광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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