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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鳩滅什 이야기
구마라집鳩滅什(344~413,70세),구마라습, 구마라지바카등으로 부른다. 구마라집은 중국 서쪽 쿠차국 사람으로 서기 344년에 출생하였다. 그가 유명한 것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대승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데 최고의 번역가로 불리워진다. 금강경, 법화경, 아미타경, 유마경, 부모은중경등 여러 가지 경전을 번역 하였다.
중국의 장안이 실크로드 출발점이다. 장안을 출발하여 서쪽으로 가면 천수, 난주, 무위, 장액, 주천, 가욕관, 돈항으로 이어진다. 돈황에서 다클라막한 사막이 전개가 된다. 맨 위쪽에는 가게 되면 <천산북로>인데 두루판, 우루무치로 가는 것이고 중간으로 가면 <천산남로>인데 쿠얼러 쿠차 카슈가르로 가는 길이다. 맨 아랫길은 <서역남로>인데 돈황 누란 호탄 사차 카슈가르로 이어진다
구마라집은 쿠차국에서344년에 출생하여 70여세의 행화를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구마염鳩摩炎인데 인도북쪽 스리나가르 계빈국출신이다. 그는 쿠차국에서 불교가 흥왕하고 모든 백성이 불교를 신봉한다는 소문을 듣고 쿠차국에 불교를 홍포하고자 찾아 온 것이다. 그때 쿠차국의 왕은 <백순>인데 구마염을 국사로 모시게 된다. <백순>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이름이 <기바耆婆>이다. 국사 구마염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여 <구마라집>이 출생하게 된다. <기바>는 아기를 출산하고 나서 몸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다. 몸에서 이상한 것이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알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어깨 뒤쪽에 보석같은 붉은 색의 반점이 있었는데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분명 구마라집이 출생하고 나서부터 일어나는 일들이 분명했다. 위대한 성인이나 현인이 탄생하는데는 분명 특별한 조짐이 일어나는 것이다.
구마라집이 성장하자 라집을 데리고 동작리대사, 서작리대사는 쿠차국을 대표 큰 사찰에 자주가서 참배하고 구라집에게 불교를 바라보는 안목을 가지게 하였다. 키질 천불동 석굴이 있는데 스님과 불자들이 쿠차국을 불국토를 만들고자 3세기부터 9세기까지 석굴을 조영 하였다. 그때 쿠차국에는 <불도설미>라는 훌륭한 고승이 있었는데 많은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았다. 구마라집이 9살 때 <기바>는 구마라집을 데리고 계빈국(가습미라)으로 유학을 간다. 계빈국은 지금의 인도 서북쪽에 있는 스리나가르이다 계빈국을 가기 위해서는 총령 파미르고원을 넘어야 한다.
이 길은 너무 아득하여 한빙지옥 독사지옥을 건너는 만큼 어려운 곳이었다. 쿠자국에서 우전국(호탄)까지는 자갈과 모래의 바람소리는 사람의 혼령을 빼앗고 말은 비명을 질렀다. 또 총령을 넘을려면 사람들은 몸에서 땀이 나고 얼굴은 창백하며 머리는 두통을 일으키고 구토를 하며 서로 붙잡고 끈으로 연결하게 조심스럽게 길을 간다. 가축이 절벽 아래 천길 낭떨어지기로 떨어지면 절반도 내려가기 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3개월만에 기바는 아들 구마라집을 데리고 계빈국에 도착했다. 계빈국에서 최고의 고승 반두달다스님이 계셨다. 그 분을 만나 중아함, 장아함, 증일아함, 잡아함등 하루에 1천개의 아함경 경전을 게송을 외웠다. 3년을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대월지국에 어느 산에서 쉰 살이 넘게 보이는 한 분의 나한을 만나게 된다. 움푹 판인 눈에서 한참이나 구마라집을 쳐다 보았다. 구마라집이 물었다. “대덕께 여쭤봅니다. 어린 사미승이 특별함이 없는데 어찌 이토록 저를 자세히 살피십니까?” “어머님께서는 사미승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만약 35세까지 파계하지 않으면 불법을 대흥시켜 중생을 구제 할 것이고, 만약에 파계 한다면 총명한 법사가 될 것입니다”라고 예언을 하였다.
구마라집이 어머니를 따라 9살에 계빈국에 가서 3년을 공부하였고
온숙국, 소륵국(카슈가르)에서 수리야소마 스승에게 대승불교 교학을 배우고, 14살에 쿠차국으로 돌아왔다. 구마라집 20세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전진왕 부견이 있었다. 그는 불심이 대단한 황제였다. 그리고 쿠차국의 구마라집을 흠모하였다. 그래서 부하 장수 여광(呂光)에게 군사 7만5천 병력을 주어서 구마라집을 데려오게 하였다. 쿠자국은 중국과 흉노족의 중간에서 정치적으로 갈등하였다. 작은 나라 소국으로 힘의 균형에 따라 요동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쿠차국을 부견은 못마땅하게 생각 하였다. 그래서 많은 군사를 파견한 것이다. 장수 여광은 구마라집을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오다가 양주에 이르러 부견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양주 땅에서 후량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17년간 머물게 된다. 여광은 불교신자가 아니었다. 인문학적인 교양이 본래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구마라집을 희롱하여 강제로 결혼시켜 2세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여성을 죽인다고 겁박하였다. 구마라집의 17년의 양주 생활은 그렇게 흘러 갔다. 구마라집 나이 50세, 20대 젊은 스님이 찾아온다 그가 바로 유명한 승조스님이다. 나중에 구마라집은 3천명의 제자를 두게 되는데 그 가운데 8명의 준걸있었다. 승조, 도생, 승예, 도융, 담영, 혜엄, 혜관, 도항스님이다.
서기 401년 장안에 있던 요흥황제는 후량(양주)을 공격하여 여광을 제거하고 구마라집을 장안으로 모셔오게 된다. 쿠자국을 떠난 구마라집이 17년만에 장안에 온 것이다. 요흥은 구마라집을 극진에 존중하면서 우대하였고 소요원 서명각 머물게 하면서 여러 가지 불교경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금강경, 법화경, 유마경, 아미타경, 부모은중경등 많은 경전을 한역으로 번역하였다. 특히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공空 이 개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대승불교 경전 가운데 최고의 경문을 꼽으라면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그 중심에는 <공>이라는 한 글자가 있다. 공을 체득하느냐 못하느냐가 생사와 열반의 갈림길이다. 마음을 비우느냐, 비우지 못하느냐, 백천간두에서 손을 놓을 것이냐, 잡고 있을 것이냐하는 것은 진실로 공을 체득하는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공은 중국, 우리나라, 일본, 베트남등에서 불자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진리의 개념이다. 이 언어를 어떻게 이해를 하고 통찰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공은 진공묘유로 표현된다. 진공묘유 眞空妙有 진실로 비우면 묘법(묘유)이 있다. 구마라집이 처음으로 공空이라는 언어를 우리에게 소개한 분이다. 공, 극락, 지옥, 공명조, 아발로기데스바라(관세음보살) 이런 경문은 모두 구마라집이 번역한 것이다. 구마라집스님은 70세 이르러 내가 죽고나서 내 몸을 화장하라 내가 지금까지 번역한 부처님의 경전이 옳은 것이라면 결코 나의 혀바닥은 타지 것이다 413년 70세의 일기로 열반에 드셨다. 화장을 해 보니 혀만 불에 타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중국의 서안의 초당사에 가면 위대한 스승 구마라집의 설탑이 모셔져 있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유마경에 나오는 경문이다
망상생구妄想生垢: 망상이 더러움을 만든다. 마음이 더럽기 때문에 중생이 더럽다(유마경)
강의 사족
선찰대본산 범어사는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독립운동과 삼국유사가 있고 선종의 제일의 화두가 성성적적하게 살아 있는 도량이다. 이런 도량에서 불자가 살아간다는 것은 큰 행복이고 자랑이다. 오늘 불자들에게 내용의 주제 강의는 <구마라집이야기>이다. 지난 1월달에 구마라집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나의 스마트 폰에 메시지가 한 개 들어 왔다. 어느 불교여행사에서 중국의 실크로드 쪽으로 성지순례를 간다는 것이다. 내가 호감을 가지고 유심히 본 것은 쿠차 호탄 사차 카슈가르 가 일정표에 있었다. 1월달의 실크로드는 아주 추운 곳이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고 과거에 쿠마라집이라는 위대한 고승이 탄생한 곳인데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였다. 쿠차의 날씨는 백두산 인근에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심양 연길 단동 정도로 날씨가 찬 곳이다. 그래서 방한복을 야무지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이곳을 그렇게 가려고 하는 것은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하여 어떤 과정으로 중국까지 오게 되었는가하는 것이 나의 궁금증이다.
우리 불자님들 가운데 인도 불교 성지에 다녀 오신 분 손 한번 들어 보세요, 돈황 쿠차 카슈가르 다녀 오신 분 손 한번 들어 보세요, 파키스탄 불교유적지에 다녀 오신분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이 분들게 큰 박수 한번 부탁합니다. 아직 성지를 한번도 못 다녀 오신 불자님께도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있어서 살아 생전에 꼭 다녀 오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이 불자님들께도 큰 박수 한번 부탁 드림니다.
백담사 조실스님으로 계셨던, 조오현 설악무산 큰스님은 당신의 은사스님 기일이 되면 전국에서 많은 스님들이 찾아온다. 그 가운데 집도절도 없는 객스님들이 30여명이 찾아온다. 어느날 조오현큰스님은 객스님 30여명에게 내가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너그들 데리고...........
*소설을 쓰는 어느 작가에게 말했다 <좋은 글은 자기일탈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와 너무 고지식하면 안돼 제대로 된 글이란 안 보이는 것을 쓰는 거야> * 스님 담배 이야기 손가락 담배를 보고 엇 너가 왜 그기있어....
범어사 일요법회 회보지를 펴 주시기 바란다. 원래 이름은 <구마라지바카>이다 중국에서는 구마라집 구마라습이라고 부른다. 과거 344년에 출생한 쿠차국의 왕족 구마라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왜 구마라집인가.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반야심경은 구마라집의 번역이다. 그 번역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중국의 천수에 가면 맥적산 석굴이 웅장하게 나타난다. 다시 서쪽으로 가면 난주가 있는데 병령사 석굴이 있다. 인도나 서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모두 병영사 부처님께 무사귀환을 기도 하였다. 장액에 가면 대불사에 아주 35미터의 큰 와불이 있다. 과거 1980년 중반 일본 NHK방송에서 실크로드라는 것을 방영 했을 때 이 와불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돈황에 가면 아름다운 불보살님의 조형물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 61굴에 가면 중국 오대산도가 있는데 신라사절단이 방문하는 모습 고려 사신이 그려져 있고 혜초스님 자장율사의 흔적을 조금 보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이 가면 61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45굴을 가보자 아주 아름다운 모습의 보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밀로의 비너스라고 하면 동양은 돈황의 45호 석굴 보살상이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실크로드의 중간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고 또 크고 작은 여러 도시가 있다. 쿠차, 호탄, 사차, 카시이다 이런 지역의 연결도로를 탑사고도(塔沙古道)라 부른다. 모래속에 존재한 옛 寺塔의 길 정도일 것이다. 이 지역을 천불동(千佛洞)이라 하는데 돈황이 천불동이요 투루판의 베제크레크가 천불동이며 쿠차의 키질이 천불동이다. 일단 벽화를 그리면 천불의 불화를 그리는 것이다.
돈황-투루판(베제크레크 천불동)-쿠차(구마라집)-타클라마칸사막- 호탄(단단유리크 절터)--사차--카시가르(소륵국)- 우무루치를 연결한다.
구마라집은 344년 출생인데 우리들에게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가르쳐 준 인물이다.
산스크리트어를 최초로 한문으로 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보여준 분이다.
공은 텅비어 있다 공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꽉차있다는 뜻도 된다.
먼저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그냥 비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진공묘유라 한다
금강산 유점사 가도기요마사 왜병을 데리고 갔다. 사명대사가 이곳에 왜 왔느냐고 묻자 조선의 보물이 있다고 해서 왔노라 한다. 사명대사가 조선의 보물은 구대가 가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현장와 서유기4(도종환 시)
그와 함께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 안에 있는 세마리 짐승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그 짐승들 데리고 천축까지 간다
그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먼 길 간다
버려야 한다면서 그들 없으면 못 간다
끝까지 그들을 버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멀다, 천축
혜초스님 밀교 진언종이다.
실크로드의 소그드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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