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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깨달음 이야기
  일광  2023-03-05 11:46:27, 조회 : 580, 추천 : 10

부처님의 깨달음 이야기

1. 비극의 절정
부처님의 출가와 고행은 비극의 절정, 비탄의 극치, 슬픔과 비통의 극단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게 고행을 하는 것은 마음속의 번뇌 즉 마구니(마왕파순)를 항복받고 조복 받기 위하여 고행을 한 것이다. 그러면 고오타 싯다르타의 마음에는 어떤 번뇌가 있었을까? 첫째 정반왕의 후계자로 전륜성왕이 되어야 할 자신이 출가하여 아버지 정반왕과 양모 마하파자파티 그리고 아내 야소다라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둘째 부처님의 나라는 카필라바스투, 카필라성인데 작은 나라이다. 이웃에 코살라의 큰 나라가 있어 자신이 수행자가 되면 카필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 생애에서 카필라는 결국 코살라에게 멸망된다. 셋째는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는데 과연 완전하고 완벽한 깨달음을 성취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것을 <불설보요경>에서는 마왕 파피야스가 사문 고타마를 회유하고 설득한다. “사문 고타마여! 그대가 원하는 열반은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사문 고타마여! 그대는 빨리 이곳을 떠나라. 그러면 반드시 사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사문 고타마여! 인간세계의 향락을 누려라” 마왕 파피야스는 또 말한다.“사문 고타마여 나는 욕망의 세계 주인이다. 하늘과 인간의 모든 것이 다 내게 소속되어 있으니 그대 또한 나의 뜻을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어찌 나의 세계를 벗어나려 하는가?” 이에 대하여 사문 고타마는 이렇게 말했다. “마왕 파피야스여 그대는 욕망세계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가장 높은 체 하나 그것은 가장 높은 것도 아니며, 진정한 주인도 아니다. 열반을 증득해 부처님 법에 도달한 이라야 비로소 높은 것이며 해탈을 이루어 부처님 세계에 들어 갈 때 진정한 주인이 되리라 나는 기필코 부처님의 정각을 이루리라”
싯다르타 수행자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정각을 성취하고자 할 때 마왕파순은 그의 딸 3명을 보내어 정각을 방해하도록 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음악을 연주하며 교태를 부리면서 싯다르타를 유혹을 한다. 첫째 딸 이름은 염욕(染欲)인데 욕망을 즐기게 하는 천녀이고, 둘째 딸은 능열인(能悅人)인데 쾌락을 즐기게 하는 천녀이며, 셋째 딸은 가애락(可愛樂)인데 애욕을 즐기게 하는 천녀이다. 결과적으로 이들 3명은 탐진치 삼독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 마왕 파피야스는 그 권속이 무려 18억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번뇌를 도상화하여 벽화에 다 그릴 수는 없다. 그 가운데 아름다운 미녀를 특정화하여 대표로 그린 것이다.
마왕파순(魔王波旬)은 자신의 내면에서 일으나는 여러 가지 번뇌를 통칭하는 말이다. 마라 파피야스를 음역하여 마왕파순이라 한다. 마왕은 마라, 마왕, 마군(魔軍), 마구니라하고, 파피야스는 파순이라 한다. 즉 욕망, 애욕, 갈애, 시기, 질투, 분노, 갈등, 번민, 나태, 탐진치, 무명등 여러가지를 마왕파순과 그 권속이라 한다. 이들은 떼로 몰려 다닌다. 자신의 정신 줄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마왕파순은 그 틈새를 파고든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내재된 미세한 번뇌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와같은 모든 번뇌를 모두 극복하고 정각을 성취한 것이다. 사찰에 가면 법당 벽화에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아래 앉아서 정각을 성취하고자 앉아 있는데, 부처님 주위에 교태를 부리는 3명의 미녀가 유혹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많은 번뇌 가운데 미녀 3명을 특정하여 상징적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법구경>에 이런 글귀가 있다.“전쟁터에서 싸워 백만인을 이기는 것 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뛰어난 승리자이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경전의 글귀이다. 고타마는 성씨이고 싯다르타는 이름이다. 고타마는 소를 숭배하는 조상이고 싯다르타는 성취하다 소원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석가는 종족의 이름이다. 모니는 침묵하다의 뜻인데 석가족의 성자(聖者)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聖이라는 이 자는 귀耳, 입口, 임壬,  성인 성자는 이 세 개의 글자가 합성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나의 귀를 가지고 상대방의 말을 올바른 자세로(올 곧게) 잘 들어주는 사람(壬 선비사) 이런 분을 성인이라 한다.

2. 연기의 공식과 연기법송
부처님께서는 음력 12월 8일 새벽에 새벽 별을 바라보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법이다. 인과율, 인연화합, 상의상관성, 십이연기이다. 이것을 요약하면 생명과 존재의 실상, 존재의 속성, 존재의 법칙을 깨달은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그 존재의 진실을 깨달은 것이다. 음력 12월 8일은 부처님 성도일, 4월 8일은 부처님 오신날, 부처님 탄생일, 2월 8일은 부처님 출가재일 그리고 2월 15일은 부처님 열반일이다. 불교의 4대명절 가운데 8자가 3번 들어 간다. (2월 8일, 4월 8일 ,12월 8일) 그래서 부처님을 팔(8)자를 고친 사람, 팔자를 편사람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특히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이것은 공히 중국인들이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8八>이다 중국식 발음으로 <빠>라한다 또 <빠發>라고 하면 재물이 모이다. 돈을 벌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자동차번호, 휴대폰 번호에 8자가 들어가는 번호를 굉장히 선호한다.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인연소기(因緣所起),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이다. 직접적인 원인(因)과 간접적인 원인(緣)이 인과연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과일나무를 예를 들면 씨앗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흙과 거름과 태양과 물 공기등 이와같은 것은 간접원인이다. 어떤 존재든 홀로 독립자존 할 수는 없다. 상의상관(相依相關) 상의상자(相依相資)적 존재이므로 서로 의지하고 의존하며 서로관계 지어져 존재하는 것이다. 상의성, 관계성. 인과성이다. 연기란? 조건에 의한 발생, 말미암아 일으남의 뜻이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두고 “나는 진리를 발견 했다” “바른 법(正法)을 성취했다”라고 말씀 하셨다.   <연기의 공식>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차유고피유),
이것이 생김으로 저것이 생긴다 (此生故彼生, 차생고피생).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此無故彼無, 차무고피무),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 (此滅故彼滅, 차멸고피멸)
어느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묶음의 갈대를 가져오게 하여 어떻게 하면 갈대를 세울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제자들은 “두 개를 엇비슷하게 걸쳐 세우면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넘어뜨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다 그 중 하나를 쓰러뜨리면 둘 다 넘어집니다라고 대답했다.  

연기법송(緣起法頌) 또는 법신게(法身偈)
제법종연기 諸法從緣起 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 생겨난다
여래설시인 如來說是因 우리 부처님은 그 원인을 말씀 하신다.
시법종연멸 是法從緣滅 모든 것은 원인에 따라 소멸한다
시대사문설 是大沙門說 이것이 우리 부처님 말씀이시다.
이 세상의 원리는 모든 것이 다 원인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왜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 나는 왜 건강하지 못한 것인지, 나는 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인지 모두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연기법송이 낭송 되었던 장소가 마가다의 수도 라지기르(라자그라하)이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아직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일이었다. 어느날 두 사람이 길을 걸어 가다가 아주 점잖은 수행승을 만나게 된다. 마승(馬勝,아슈바짓)이라는 부처님의 제자로 청정한 수행승이었다. “존경하는 수행자여! 그대는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며, 스승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스승님은 무엇을 가르쳐 주십니까?하고 물었다. “우리의 스승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저는 아직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늘 우리 부처님은 연기법송(緣起法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아슈바짓이 들려주는 <법신게法身偈>을 듣고 그 자리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그 길로 돌아가서 두 사람을 따르던 제자 250명도 함께 데리고 스승 산자야(Sanjaya)의 곁을 떠나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3. 십이연기(十二緣起)
부처님께서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발견한 진리, 깨달은 법은 바로 연기법(緣起法)이다. 부처님은 연기법을 두고 “나는 진리를 발견했다.”, “바른 법(正法)을 성취했다.”“연기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인생의 궁금증은 사람은 왜 태어나서 늙어서 죽어야 하는가?하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었다. 부처님께서 눈이 움푹 들어가고 피골이 상접하고 동맥 혈관이 보이도록 고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은 궁극적 내용이 바로 십이연기이다. 삶과 죽음, 십이연기란 존재의 진실을 찾아가는 영혼지도, 로드맵(내비게이션)이다. 십이연기를 순관(順觀)하면 다음과 같다. 연기란? 조건에 의한 발생, 말미암아 일으남의 뜻이다.
            십이연기(十二緣起)
①무명(無明) ⇨ ②행(行) ⇨ ③식(識) ⇨ ④명색(名色) ⇨
⑤육입(六入) ⇨ ⑥촉(觸) ⇨ ⑦수(受) ⇨ ⑧애(愛) ⇨
⑨취(取) ⇨     ⑩유(有) ⇨ ⑪생(生) ⇨ ⑫노사(老死)
십이연기를 역관(逆觀)하면 아래와 같다.
노사(老死)⇨ 생(生)⇨ 유(有)⇨ 취(取)⇨ 애(愛)⇨ 수(受)⇨ 촉(觸)⇨
육입(六入)⇨ 명색(名色)⇨ 식(識)⇨ 행(行)⇨ 무명(無明)
경전에 보면 과거칠불 즉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루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이렇게 일곱 분 모두 십이연기를 역관하여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역관을 하면서 생각하기를 사람은 왜 늙어서 죽는 것일까? 그것은 태어남이 원인이다. 왜 태어났을까? 그것은 업을 지었기 때문이다 업은 왜 발생 했을까? 그것은 집착이 원인이다. 무엇을 집착했을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갈애(애욕 애탐)이다. 애욕은 왜 발생하는가? 감수작용 때문이다. 감수작용은 왜 있는가? 인카운터 접촉(만남) 때문이다. 접촉은 왜 있는가? 육근(안이비설신의) 때문이다. 육근은 왜 발생하는가? 정신과 육체에서 시작 되었다. 정신과 육체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인식작용이다. 인식작용은 왜 생기는가? 행위 때문이다. 행위는 왜 있는가? 무명 때문이다. 무명은 무엇인가? 무지, 어둠, 깜깜함, 어리석음, 진리를 알지 못함이다.

① 무명(無明)
부처님께서 음력으로 12월 8일 새벽 별을 보고 정각을 성취 한다. 연기의 법칙성, 존재의 법칙성(인과율 인연화합 상의상관성)과 불생불멸 본무생사를 깨달은 것이다. 십이연기를 순관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명은 <비디야>라 한다. 무명은 <아비디야>라 한다. 밝지 않다. 어둡다. 깜깜하다는 뜻이다. 무명이란 연기의 진리를 모른다. 존재의 실상을 알지 못한다. 근원적 무지, 원초적 무지가 무명이다. 어리석음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내가 어리석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살아간다. 소크라테스는 “무지가 인간의 죄악이다”라고 했다. 춘원 이광수선생의 무명無明이라는 중편소설이 있다. 지극히 불교적인 소설이다. 죄를 짓고 교도소에 들어온 수감자끼리 감옥 안에서 서로 다투고 싸우고 분노하고 욕설한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욕계(욕망이 가득한 세계)라는 감옥에서 살면서 서로가 시기, 질투, 분노하며 욕망의 전차가 되어 폭주하고 있다. 남이 잘되면 은근히 배가 아프다. 왜 그런가? 나의 존재가 어리석음 이기 때문이다.
다른말로 지혜智慧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혜는 무엇인가? 부산에는 범어사 큰절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서 불이문에 가면 주련이 걸려 있는데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이 문에 들어오면 지해知解(알음알이 분별심)을 갖지말라"는 뜻이다. 지해知解는 지식知識과 같은 뜻이다. 지식이라 표현할 때 한문漢文의 알 지知 자는 화살 시矢에 입구口 자를 더하여 만들어진 상형 문자이다. 화살처럼 육근(六根)을 통하여 빨리 들어와서 오래 머물지
않고 희석(용해)되어 버리는 것이 知자이다. 그러면 지혜의 지智자는 무슨 뜻일까? 알지知 자에 날일日 자를 첨가하여 만들었다. 화살처럼 빨리 들어온 지식을 수행, 명상, 공부를 통하여 자기화(정체성), 침묵의 채로 걸러 내면화를 모색하는 것이 지혜이다. 지식이 사물의 현상을 보는 것이라면 지혜는 사물의 내면에 담겨 있는 본질을 통찰하는 것이다. 지식은 다른 말로 분별능력이다. 이것저것을 정확하게 구분 짓는다. 전체적으로 동일하게 하나의 의미로 이해하지 않고 너와 나, 옳고 그름을 구별 지어 대립과 경쟁과 투쟁으로, 나아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발생하게 한다. 불교가 지식을 호되게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지식 플러스 (+) 자비와 사랑이다. 교만과 독선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의미하며 동체대비同體大悲, 대자대비大慈大悲가 바로 지혜의 완성이다.  

② 행(行)
행은 행위이고 행동이고 액션이다. 무명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요동을 치고 작용을 한다. 어리석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무상의 법칙성(생멸변화 생주이멸, 무상변역)과 존재의 실상을 체득하지 못한 가운데 무명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결합(형성)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상대사는 행행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라 했다. 간다간다 해야 본래 그 자리 이르고 이르러도 출발한 그 자리란 뜻이다. 손오공이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우리의 존재는 출발 자체가 무지와 어리석음이기 때문에 무지한 행동, 어리석은 행위라고 말 할 수 있다. 달마대사가 벽을 바라보고 9년동안 앉아 있었다. 나의 중심을 잡고 요동치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③ 식(識)
근원적 무지, 원초적인 무지가 인식작용과 분별망념을 작동을 하는 것이다. 때문에 올바른 인식이라 할 수 없다. 여기서 식(識)은 우리들 마음의 단초라 할 수 있다. 인식의 주체, 경험과 지식이 우리 마음이다.

④ 명색(名色)
명색은 정신과 육체이다. 색은 육체이다. 명名은 정신이다. 왜 정신을 명이라고 말하느냐? 정신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이름이 존재함으로 명이라 한다. 색色은 물질적인 부분을 불교에서 색이라 한다. 육체와 정신, 정신과 육체를 명색이라 한다. 그러니까 인간존재가 무명으로 출발하여 행위가 있고 인식작용을 하고 그리고 육체가 정신이 형성이 되는 과정이다. 때문에 인식작용에서 육신이 첨가된 것이다.  

⑤ 육입(六入)
육입六入, 육근六根, 육처六處라 한다. 모두 같은 말이다. 육입이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여섯 개의 근본 기능이 일체를 받아들인다하여 육입이라 한다. 육근이란 이 여섯가지가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고 근본이 된다고 하여 육근이라 한다. 육처는 여섯 군데 장소에서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가 무명으로 출발했지만 무명을 지혜로 바꾸는 나의 동력, 에너지가 필요하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어느 불자가 찾아왔다. 어떻게 하면 식당운영이 잘 되겠습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육근을 들어 설명했다. 첫째 안족眼足,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 눈으로 만족해야 한다. 식당 종업원이 얼굴 표정이 안 좋거나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 또 가게가 청결하고 깨끗해야 한다. 둘째 귀(耳)로 만족해야 한다. 주인이나 종업원은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를 잘 해야 한다. 인사 잘 해서 손해보는 것 없다. “안년하세요 어서 오십시요”라고 하면서 상대방의 귀를 즐겁게 해야한다. 셋째 코(鼻)가 만족해야 한다. 식당에 불결한 냄새가 나서는 안된다. 식당다운 향내가 나야 한다. 넷째 설(舌)이 만족해야 한다. 주방에서 음식을 맛있게 정갈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들이 어느 식당에 무엇을 참 잘한단다라고 하면서 찾아간다. 여섯째 신족身足 몸이 편안하고 몸이 만족 되어야 한다 몸이 안정이 되게 해야한다. 일곱째 의(意足)는 마음에 만족을 주어야 한다.그것은 고객 감동이다. 가장 좋은 절은 친절이고 가장 나쁜 절은 불친절이라고 한다 명심하자.  

⑥ 촉(觸)
접촉하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다. 만남(인카운터)이다. 육근(六根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 육경(六境) 즉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만나 육식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 意識을 만나 여러 가지 접촉을 가진다. 인생이란 만남의 연속이다. 때문에 책을 많이 읽고 여행을 많이 하고 사찰에서 템플스테이에 동참 해 보라. 그러면 인생에 변화가 올 것이다. 불교여행사에서 <중국의 선종 사찰순례>를 한다고 문자메시지가 왔다. 그래서 신청을 하고 날짜를 맞추어 인천공항에 갔다. 패키지여행인데 광고를 보고 모인 일행은 약 10명정도 되었다. 인솔자 없이 우리는 중국 정주에 도착했다. 조선족 가이드가 나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먼저 초조 달마대사와 이조 혜가선사의 수행처를 참배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 가운데 어느 거사님은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중국 선종 사찰순례”라고 하면서 자신의 딸이 아버지 효도관광 시켜준다고 해서 동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조선족 가이드가 있었지만 불교분야는 오랫동안 불교공부를 했으니 내가 안내를 많이 하였다. 동참한 불자들이 참 좋아 하였다. 여행이나 성지순례에서 최고로 중요한 부분은 가이드 인솔자 지도법사의 안내와 현재 문화재 역사적 의미와 같은 설명이 제일 중요하다. 이것이 야행의 핵심이다.

⑦ 수(受)
감수작용, 구체적인 느낌을 말한다. 삼수(三受), 세가지로 받아 들인다.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고수는 괴롭다는 느낌, 낙수는 즐겁다는 느낌, 불고불락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다.

⑧ 애(愛)
불교에서는 애욕(愛慾) 애탐(愛貪) 갈애(渴愛)라고 한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원래 “사랑”이라는 의미는 순수하고 고결한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젊은 남녀가 처음에 만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이 집착으로 변하면 괴로움이 되고 갈애가 되는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과 같은 것이 애욕이다. 이런 말이 있다. 남녀가 만나 3개월은 사랑하고, 3년은 싸우고, 30년은 참고 견디며 살아간다고 한다. 산에 고슴도치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산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자기와 비슷한 고슴도치 한 마리를 발견 하였다. 그리고 하루는 그곳을 찾아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주 만나게 되었고 결국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부의 애정(부부금슬)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뾰족한 가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3년의 세월이 지나 서 어느날 서로 부둥켜 앉았는데 갑짜기 “왜 찌러나? 했다. 내가 찔렀나. 네가 먼저 나를 찔렀지”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찔렀다고 하면서 싸우게 되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⑨ 취(取)
순수한 사랑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집착이 발생한다. 왜 집착이 생길까 그것은 처음 시작이 어리석음의 무명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집착이 있는 것이다. 껍데기와 현상만 보고 본질과 근본을 통찰하지 못하기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눈에 콩깍지가 씌이다라고 한다. 존재의 진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집착이 있다.

⑩ 유(有)
연기란 말미암아 일어나다의 뜻이다. 조건의 발생이다. 집착이 있으면 반드시 유(업業)이 발생하는 것이다. 행동, 행위, 액션이 업이다. 그래서 업을 짓는 것이다. 그 업의 과보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⑪ 생(生)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늙어서 병이 들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남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서 <본유本有> <본생本生>이라고 한다. 근본으로 존재하다. 근본이 된 생이라는 뜻이다.  

⑫ 노사(老死) 왜 늙어서 죽는가? 그것은 우리 존재가 어리석음이고 진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최고의 고승 틱낫한 스님은 연기법을 “홀로 존재하지 못함”이라고 정의했다. 연기란 궁극적으로 상의성, 관계성, 인과성이며, 동체대비 대자대비를 강조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중생이 아픔으로 내가 아프다” “그대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이것이 연기법의 핵심이다. 부처님의 깨달은 그것은 나의 내면의 본질을 깨달는 것이고 사회성 역사성 시대정신을 깨달는 것이다.  

(부디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다오)   틱낫한스님 시

나는 깨끗한 연못에서
행복하게 헤엄치는 개구리다.
그리고 나는 소리도 없이
그 개구리를 삼키는 풀뱀이다.

나는 대나무 막대기처럼
뼈와 가죽만 남은 우간다 어린이다.
그리고 나는 우간다에
살생 무기를 팔아먹는 무기상이다.

나는 작은 배로 조국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가 해적한테 겁탈당하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 열두 살 소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해적이다.
볼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굳어진 가슴의 해적이다.

나는 막강한 권력을 움켜잡은
공산당 정치국 요원이다.
그리고 나는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천천히 죽어가며, 인민을 위해
‘피의 대가’를 치르는 바로 그 사람이다.

내 기쁨은 봄날처럼 따뜻하여
대지를 꽃망울로 덮는다.
내 슬픔은 눈물의 강이 되어
넓은 바다를 가득 채운다.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그리하여, 내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동시에 듣고
내 기쁨과 슬픔이 하나임을 보게 해다오.

부디 나를 참이름으로 불러다오.
그리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내 가슴의 문을,
자비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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