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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을 추모하며........이일야 교수의 글
  일광  2022-02-18 15:42:13, 조회 : 27, 추천 : 0

늘 깨어있는(mindful) 삶

얼마 전 신문기사를 통해 틱낫한(Thich Nhat Hanh, 1926~2022)스님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푸른 눈의 승려 현각스님이 <만행>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스승인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과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Dalai Lama), 캄보디아의 마하 고하난다 스님과 함께 세계 4대 생불(生佛)로 소개한 인물이다. 문득 그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가 왜 살아있는 붓다로 추앙받고 있는지, 그의 가르침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1926년 베트남 중부 어느 평화로운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16세의 나이에 출가하게 되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사진 속에 찍힌 승려의 모습이 너무 평화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 베트남의 상황은 그를 평범한 수행자로 살아가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1883년부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프랑스는 또 다시 베트남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였다. 당시 승려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저항운동에 가담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

어디 그뿐이던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전쟁은 베트남을 점점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틱낫한 스님은 비극적인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순회강연을 다니면서 조국의 사정을 세계에 알리고 프랑스 파리에 불교평화대표단을 창설하여 반전평화 운동을 벌이게 된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약에 감동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7년 그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하였다. 반면 틱낫한 스님의 활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 베트남 정부는 그에게 귀국 금지 조치를 내린다. 조국의 평화를 위해 운동을 벌이다 졸지에 망명자 신세가 된 셈이다.

1973년 그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수행 공동체인 플럼 빌리지(plum village), 우리말로 자두 마을을 세운다. 이곳에서 그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돌보면서 수행 공동체에 어울리는 마음 챙김(mindfulness)이나 걷기 명상(walking meditation)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이 명상 프로그램은 종교와 관계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승려뿐만 아니라 신부, 목사, 랍비 등 다른 전통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곳에는 그리스도와 붓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그에게 있어 이웃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의 종교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길이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플럼 빌리지로 몰려들었다. 그는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강연을 하였고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였다. 그렇게 나온 100여권의 저서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사람들의 가슴을 철학과 수행의 향기로 적셔주었다. 그가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늘 깨어있는(mindful)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의 술에 취해 정신없는(mindless) 삶을 살아간다. 삼독이 삶의 주인공이고 나 자신은 엑스트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어있는 삶으로 질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신없이 살고 있는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자두 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걷기 명상이나 마음 챙김 등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수행으로써 의미를 가진다.

그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붓다의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아주 쉽게 전한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중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틱낫한의 영향이 크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가르침은 불자(佛子)들뿐만 아니라 이웃 종교를 신앙하는 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애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화>, <너는 이미 기적이다>를 비롯하여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지금까지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는데, 그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치고 싶었다. 2018년 비로소 그의 바람이 이루어져 고향에서 평화롭게 지내다가 얼마 전 고요 속으로 떠났다. 그리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해서 전 세계의 플럼 빌리지 산책로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다음은 틱낫한 스님이 생전에 남긴 말이다.

“이 몸은 내가 아니며 나를 가둘 수 없다. 삶과 죽음은 오고가는 문이며, 숨바꼭질 놀이일 뿐이다. 그러니 내 손을 잡고 웃으면서 잘 가라고 인사하자. 내일, 어쩌면 그 전에 다시 만날 것이다. 삶의 수많은 길에서 항상 다시 만난다.”

☞ 마음엔 평화, 입가엔 미소

오래 전 대학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할 때의 일이다. 어떻게 하면 명상의 나라 인도를 쉽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틱낫한 스님의 시를 한 편씩 소개하면서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의 시에는 깨어있는 삶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숨을 쉬거나 산책을 하며, 손을 씻거나 목욕할 때 등 일상의 순간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짧은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상의 모든 순간을 수행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산책을 할 때 다음과 같이 호흡에 집중하면서 걷는 것이다.

“Breathing in, I calm my body. Breathing out, I smile.”

숨을 들이마실 때 내 몸이 고요해지고, 숨을 내쉴 때 미소 짓는다는 뜻이다. 이를 단순화하면 ‘마음엔 평화, 입가엔 미소’가 된다. 들숨 때 ‘평화’를, 날숨 때 ‘미소’를 생각하면서 걸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자신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평화와 미소에 대한 생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밝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눌 수 있다. 그러면 인사를 받는 상대 또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당시 학생들에게 강의실까지 걸어오면서 이 명상을 실천해보라고 주문하였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일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한 학기 동안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이처럼 일상을 수행의 공간으로 활용하면 깨어있는 삶을 사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걸으면서 ‘마음엔 평화, 입가엔 미소’를 생각하면, 그 자체가 훌륭한 걷기 명상이 된다.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데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호흡에 집중만 하면 되는 일이다. 틱낫한 스님은 이러한 수행을 통해 현재의 순간(present moment)을 아름다운 순간(wonderful moment)으로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지적처럼 늘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곳이 곧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다.

“지금 여기 깨어있는 마음이 바로 정토요 천국이다.”

종교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바로 구원이다. 그 구원의 공간을 불교에서는 정토(淨土)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국(Heaven)이라 부른다. 틱낫한 스님에 의하면 그곳은 죽어서 가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있는 바로 지금 여기라고 한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는데, 정신이 없거나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깨어있는 그 순간이 바로 정토요 천국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나 정토에 태어나려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깨어있는 순간으로 가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마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죽음이 찾아와도 그리 슬퍼할 것 같지는 않다. 틱낫한 스님이 입적하자 뉴욕타임스(NYT)는 소식을 전하면서 그가 남긴 명언을 하나 소개하였다.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은 단지 개념일 뿐이다. 죽음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그것들은 실제가 아니다(Birth and death are only notions. No Death, No Fear. They are not real).”라는 내용이다. 실제도 없고 개념에 불과한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가 지적한 것처럼 삶과 죽음은 그저 서로 오고가는 출입문일 뿐이다. 그러니 서로 길을 가다가 만나면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나누는 게 어떨까. 그곳이 우리 동네 강변길이든, 자두 마을 산책길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의 말처럼 우리는 수많은 삶의 길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 공간이 택시 안이라고 가정해보자. 틱낫한 스님은 택시를 타고 가다 만나는 빨간 신호등을 붓다나 예수처럼 생각하라고 한다. 빨간 신호등은 길을 방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빨리만 가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주는 붓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차로에서 신호등에 막혔다고 짜증내지 말고 짧은 시간이지만 파란 불이 켜질 때까지 호흡에 집중하라고 한다. 숨을 들이키면서 ‘평화’를, 내쉬면서 ‘미소’를 주문처럼 외우면 택시 안은 붓다와 예수가 함께 하는 거룩한 정토요 천국이 되는 셈이다. 실제 프랑스 파리에서 택시 기사들을 상대로 틱낫한 스님의 명상 교육을 시켰더니 교통사고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도 운전하면서 빨간 불을 만나면 붓다나 예수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그러면 차안은 운전 명상(driving meditation)을 수행하는 도량이자 내 마음이 신호등에 먹히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창조하는 깨어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차안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는 결국 나에게 달린 일이다. 그를 추억하면서 마음으로 그의 묘비명을 써보았다.

“마음엔 평화, 입가엔 미소”

위 글은 이일야 교수님의 글입니다.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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