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신광사 卍 복천사 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회원가입  로그인
경흥국사가 문수보살 친견
  일광  2021-07-23 08:00:13, 조회 : 69, 추천 : 4

문수월(문명희) 천도재  천도재란 무엇인가?


오늘은 불기 2565년(2021년) 음력 6월 13일, 문명희 문수월불자님의 김해김씨 시댁의 선망조상 일체영가를 천도하는 날이다. 천도재(薦度齋)란 무엇인가? 추천(천거)하여 제도한다라는 뜻이다. 부처님에게 문명희 불자님의 시댁<김해김씨 조상님 일체영가를 추천합니다> <추천하고 추선합니다>라고 고하여 왕생극락를 발원하는 법회이다. 오늘 저가 발원하고 축원하는 영가님는 문명희불자님의 시댁조상 일체영가들이다. 축원이름 00영가 00영가.....부디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하여 주십시요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아직도 구천에 떠도는 영가님, 의초부목지정령으로 된 영가님, 혹 어딘가에서 고통받는 영가님, 허공배회 중음중신 영가님들, 이런 모든 김필곤 거사님의 김해김씨 영가님들 추전하여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것이다. 재(齋)는 삼가다 또는 부정(不淨)을 피한다는 의미를 가진 우포사다(Uposadha)를 번역한 말로 재가불자들의 일정한 날에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돌아가신 영혼을 위하여 정성을 드리는 것이다.
지장경에 보면 천도재를 지내면 7개 가운데 6개는 재를 올리는 문명희 불자님이 가지고 나머지 한 개는 영가들이 가진다고 한다. 이것은 먼저 문명희 불자님이 조성영가님들에게 과일과 떡과 공양과 꽃과 일체를 공양을 올리니 이것이 위로 효심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상님들은 내리 사랑으로 문명희 불저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과 사랑, 사업성취를 주는 것이다.  
문명희불자님이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문지용오빠가 미륵사 삼성각에 올라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삼성각에는 독성님 산신님 용왕님을 모시는 곳이다. 독성님은 혼자 수행하여 도를 깨달아 성인이 되신분이다. 김현성님의 시에 <굽이치는 파도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굽이치는 파도는 사바세계를 살면서 시련과 역경이다. 백합의 골짜기는 영광과 행복 마른나무가지위에 다다른 까마귀는 절대고독의 경지. 독야청정이다.
이런 곳에 계셨던 <문지용> 오빠가 삼성각에서 내려와서 스님이 있는 요사채로 와서 미륵사 스님인 나와 겸상을 해서 공양을 하는 것이다. 오빠가 나를 보더니 스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셨다. 이런 표현을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 또는 스님이 주시는 천도재 감로의 공양을 받아먹고 싶다는 메시지이다.
1. 경흥법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다.  
신라의 문무왕(文武王)은 그 2년(681)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태자(神文王)에게 이렇게 분부하였다. 「경흥(憬興)법사를 국사(國師)로 삼도록 하라. 짐의 말을 잊지 말라.」 신문왕은 즉위하여 부왕의 그 당부를 잊지 않고 경흥법사를 국사로 삼고, 경주 삼랑사(三郎寺)에 머물게 하였다. 국사가 되어 삼랑사에 거주하던 경흥법사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한 달이나 몸져 누워 있었다. 몸살 같으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아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하루는 관세음보살님이 비구니(比丘尼) 스님으로 변장하여 찾아 왔다. 문안을 드리고 나서 국사의 병을 묻고는 경전에 선우(善友)가 병을 낫게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스님의 병환은 신경을 너무 쓰시고 피로하신 까닭으로 생겼기 때문에, 실컷 웃으시면 낫게 되십니다. 」 비구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국사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열한가지의 얼굴 모양을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데, 하고 기이하고 변화무쌍하여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 모양마다 어찌나 우스운지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점잖은 국사님이 무릎을 치면서 눈물이 다나오도록 한껏 웃었다. 참으로 정신없이 웃었다. 그 춤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정말 국사라는 체면도 잊어버리고 실컷 웃을 수가 있었다. 십일면관세음보살은 자상3면, 진상 3면, 백아상출상 3면, 대폭소상1면,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의 본래 1면 해서 십일면관세음보살이시다. 십일면에서 각기 다양한 춤사위를 보여 주신 것이다. 어제 반여동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망고가 왔는데 물건이 좋지 않아서 퀵을 불러서 돌려 보내고 승용차를 몰고 양산 농수산물센터로 갔다. 과일 망고를 보니 그 내용이 퀵으로 보낸 망고와 같은 수준이었다. 좋은 것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반여동 보살님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양산 농수산물센터의 한쪽 코너에는 감자로 만든 엄마손 라면을 남자분이 판매를 하는데 얼굴에 손에 갖다대고 우리를 보면서 방가방가하는 웃음이 나왔다. 라면을 사 주었다. 이것이 십일면 관세음보살이다.    
비구니 스님의 춤이 끝났을 때에는 경흥국사의 병도 씻은 듯이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비구니는 국사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국사는 낯선 그 비구니스님이 어느 절에 사는 누구인 줄을 알 수가 없었다. 곧 사람을 시켜 뒤따라가서 알아오게 하였다. 국사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삼랑사 문밖으로 나간 비구니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곧장 남항사(南港寺)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남항사는 삼랑사의 남쪽에 위치한 절이다. 뒤따르는 사람이 걸음을 빨리하여 남항사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비구니스님의 그림자가 이미 절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얼른 절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그 비구니의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절에 있는 스님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아무도 비구니스님을 본 일이 없고 또 이절에는 그러한 비구니가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 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왔는데, 그럴 수가 있는가. 잘못 보고 따라온 것이 아니므로 틀림없이 남항사안에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그 사람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법당 안에는 십일면 관세음보살(十一面觀世音菩薩)의 탱화가 모셔져 있었다. 그 관세음보살님 앞에 아까 비구니스님이 짚었던 대나무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남항사의 십일면관세음보살이 비구니로 몸을 나투어서 경흥국사의 병을 고쳐 주었던 것이다. 경흥스님은 신라 통일 직후의 고승이며, 원효스님 다음으로 저술을 가장 많이 남긴 훌륭한 학문스님이었다. 그러한 스님이 저술하느라 또는 국사(國師)로서 임금님을 자문하느라 피로가 겹쳐서 병이 들었음을, 대비(大悲)의 원통(圖通) 관세음보살이 열한 가지의 얼굴 모습(十一面)을 지어서 실컷 웃게 함으로써 경흥스님의 병을 낫게 한 것이다.


2. 문보살을 친견하다.
어느 날 법사가 왕궁에 가고자 하므로 시자(侍者)가 먼저 동문 밖에서 말의 안장을 정돈하고 있었다. 말 안장과 신, 그리고 깃은 매우 화려한 것이었다. 자연 행인들은 법사의 행차에 길을 비켜 서 주곤 했다. 그때 행색이 몹시도 초라한 사문이 석장을 끌며 광주리를 메고 와서 하마대(下馬臺)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가 든 광주리 안에는 마른 물고기가 담겨져 있었다. 이를 목격한 법사의 시자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중의 옷을 입고 어찌 불교에서 금하는 물건을 짊어 졌느냐?"이 책망에 초라한 행색을 한 사문이 즉각 응수했다."두 다리 사이에 산 고기를 낀 것보다 시장의 마른 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도대체 뭐가 나쁘냐?"고. 마침 문을 나서던 경흥법사가 이 말을 듣고서는 사람을 시켜 사문의 뒤를 쫓게 하였더니, 남산 문수사(文殊寺) 문 밖에 이르러 광주리를 버리고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가 끌던 지팡이는 문수상 앞에 있었고, 마른 물고기는 소나무 껍질로 화해 있었다. 이 사실을 법사에게 알리자 크게 감탄을 하고야 만다."대성(大聖)[문수보살]이 와서 내가 말탄 것을 경계하였구나!"하고서는, 이후로 법사는 종신토록 두 번 다시 말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은 특별히 관세음보살님과 문수보살님이 문명희 불자님을 위하여 지심으로 예경하고 기도를 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문명희 불자님은 사대육신이 건강하고 육근은 청정하고 가정은 평안하고 가족은 건강하며
김필곤, 문명희, 김민호, 서장훈, 김미연, 장차곤, 김미라 불자님의 가정에 불보살님의 큰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한다.


-------------------------------------------------------------------------------------------------------------------------
경흥국사가 문수보살 친견

경흥국사는 신라 문무왕대(681-691)의 고승으로, 속성은 水氏이고 백제의 옛 땅이었던 웅천주(熊川州) 출신이다. 법사는 18세에 출가를 하여 불문에 들어왔고, 일찍이 삼장(三藏)을 통달하고 학덕을 겸비하여 명망이 더 높았다. 자연이 법사를 따르는 자도 많아서 일시에 나라의 중추적 인물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그의 만년에 장차 승하하려 할 즈음에 태자 신문(神文)에게 고명(顧命)하기를,
"경흥법사를 국사로 모시는 것이 좋으니, 내 명을 어겨서는 안된다."고 유훈하였다. 신문왕은 즉위하자 곧 법사를 국사가 아닌 국노(國老)로 봉하였는 바, 이는 법사의 출신지가 백제의 옛 땅인 웅천주임을 감안한 결과였다.
<<삼국유사>>의 <경흥우성조(憬興遇聖條)>에는 경흥법사와 관련된 두가지 일화를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경흥법사가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과의 친견 인연에 관한 것이다.

1. 경흥법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다.  
신라의 문무왕(文武王)은 그 2년(681)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태자(神文王)에게 이렇게 분부하였다. 「경흥(憬興)법사를 국사(國師)로 삼도록 하라. 짐의 말을 잊지 말라.」 신문왕은 즉위하여 부왕의 그 당부를 잊지 않고 경흥법사를 국사로 삼고, 경주 삼랑사(三郎寺)에 머물게 하였다. 국사가 되어 삼랑사에 거주하던 경흥법사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한 달이나 몸져 누워 있었다. 몸살 같으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아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하루는 낮선 비구니(比丘尼)가 찾아 왔다. 문안을 드리고 나서 국사의 병을 묻고는 경전에 선우(善友)가 병을 낫게 한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 스님의 병환은 신경을 너무 쓰시고 피로하신 까닭으로 생겼기 때문에, 실컷 웃으시면 낫게 되십니다. 」 비구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국사 앞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열한가지의 얼굴 모양을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데, 하고 기이하고 변화무쌍하여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 모양마다 어찌나 우스운지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점잖은 국사님이 무릎을 치면서 눈물이 다나오도록 한껏 웃었다. 참으로 정신없이 웃었다. 그 춤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정말 국사라는 체면도 잊어버리고 실컷 웃을 수가 있었다. 비구니 스님의 춤이 끝났을 때에는 경흥국사의 병도 씻은 듯이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비구니는 국사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국사는 낯선 그 비구니스님이 어느 절에 사는 누구인 줄을 알 수가 없었다. 곧 사람을 시켜 뒤따라가서 알아오게 하였다. 국사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삼랑사 문밖으로 나간 비구니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곧장 남항사(南港寺)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남항사는 삼랑사의 남쪽에 위치한 절이다. 뒤따르는 사람이 걸음을 빨리하여 남항사 앞에 이르렀을 때에는 비구니스님의 그림자가 이미 절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얼른 절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그 비구니의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절에 있는 스님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아무도 비구니스님을 본 일이 없고 또 이절에는 그러한 비구니가 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 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왔는데, 그럴 수가 있는가. 잘못 보고 따라온 것이 아니므로 틀림없이 남항사안에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그 사람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법당 안에는 십일면 관세음보살(十一面觀世音菩薩)의 탱화가 모셔져 있었다. 그 관세음보살님 앞에 아까 비구니스님이 짚었던 대나무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이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남항사의 십일면관세음보살이 비구니로 몸을 나투어서 경흥국사의 병을 고쳐 주었던 것이다. 경흥스님은 신라 통일 직후의 고승이며, 원효스님 다음으로 저술을 가장 많이 남긴 훌륭한 학문스님이었다. 그러한 스님이 저술하느라 또는 국사(國師)로서 임금님을 자문하느라 피로가 겹쳐서 병이 들었음을, 대비(大悲)의 원통(圖通) 관세음보살이 열한 가지의 얼굴 모습(十一面)을 지어서 실컷 웃게 함으로써 경흥스님의 병을 낫게 한 것이다.

한편 문수보살 관련 일화는 <<보현장경(普賢章經)>>의 '기마비구(騎馬比丘)'의 교훈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오늘 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이 일화는 법사의 왕궁 나들이 의전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 간략한 내용은 이러하다. 어느 날 법사가 왕궁에 가고자 하므로 시자(侍者)가 먼저 동문 밖에서 말의 안장을 정돈하고 있었다. 말 안장과 신, 그리고 깃은 매우 화려한 것이었다. 자연 행인들은 법사의 행차에 길을 비켜 서 주곤 했다.
그때 행색이 몹시도 초라한 사문이 석장을 끌며 광주리를 메고 와서 하마대(下馬臺) 위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가 든 광주리 안에는 마른 물고기가 담겨져 있었다. 이를 목격한 법사의 시자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중의 옷을 입고 어찌 불교에서 금하는 물건을 짊어 졌느냐?"이 책망에 초라한 행색을 한 사문이 즉각 응수했다."두 다리 사이에 산 고기를 낀 것보다 시장의 마른 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도대체 뭐가 나쁘냐?"고.
마침 문을 나서던 경흥법사가 이 말을 듣고서는 사람을 시켜 사문의 뒤를 쫓게 하였더니, 남산 문수사(文殊寺) 문 밖에 이르러 광주리를 버리고 숨어버렸다고 한다. 그가 끌던 지팡이는 문수상 앞에 있었고, 마른 물고기는 소나무 껍질로 화해 있었다. 이 사실을 법사에게 알리자 크게 감탄을 하고야 만다."대성(大聖)[문수보살]이 와서 내가 말탄 것을 경계하였구나!"하고서는, 이후로 법사는 종신토록 두 번 다시 말을 타지 않았다고 한다.이는 <<보현장경>>에서 설파하고 있는 교훈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이 경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미륵보살이 내세에 염부제(閻浮提)에 출생을 하여, 먼저 석가 말법의 중생을 제도하되,  '기마비구(騎馬比丘)'[곧 말을 탄 비구]는 제외하여 부처를 보지 못하게 하리라!"
이상의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법사의 행장은 지극히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흥법사는 그가 남긴 수 많은 저서를 통하여 살필 수 있는 학문적 업적 뿐만이 아니라, 돈독한 신행 생활을 영위하였음를 짐작케 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때문에 법사는 당대의 추앙을 받는 국노일 수 있었던 것이다.



     

  제목순으로 정렬 이름순으로 정렬 작성일순으로 정렬 작성일순으로 정렬
1702
 최수호영가 49재 법문    일광 2021/11/14 10
1701
 함동 천도재 법문    일광 2021/10/28 13
1700
 추석 합동 다례재    일광 2021/09/18 36
1699
 부도헌다례    일광 2021/09/18 40
1698
 추석 합동다례 법문    일광 2021/09/16 37
1697
 금강경과 염라대왕    일광 2021/08/11 63
1696
 소동파와 무정설법    일광 2021/08/07 59
1695
 여적동지(如寂同知) 이야기    일광 2021/08/01 60
1694
 우주 법계에 충만해 계시는 부처님    일광 2021/07/31 75
1693
 부처님 열반, 열반재일    일광 2021/07/26 79
1692
 옹준스님과 십념왕생    일광 2021/07/25 61
1691
 아름다운 불자 여명이    일광 2021/07/23 65
 경흥국사가 문수보살 친견    일광 2021/07/23 69
1689
 장례식장에서 염불    일광 2021/07/20 87
1688
 제사 날짜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일광 2021/07/20 75
1687
 내가 친견한 달라이라마    일광 2021/05/10 109
1686
 조왕신...........구미래    일광 2021/05/10 77
1685
 사찰 후원문화사(탁발 2)......................구미래    일광 2021/04/02 93
1684
 사찰 후원 문화사(탁발).............구미래    일광 2021/04/02 112
1683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승조스님).............이일야    일광 2021/04/02 117
1 [2][3][4][5][6][7][8][9][10]..[86]   Next   >>
    목록으로

Copyright 1999-2021 Zeroboard